존재에의 머무름, “I See You”
정부는 1월 30일을 기해 실내 마스크 착용을 해제한다는 뉴스를 발표하였다. 이로써 코로나로 인해 지난 3년간 착용해왔던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월 30일을 기다렸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가볍게 집을 나섰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주차장에서, 학교에서 마주친 모든 이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나도 슬그머니 예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마스크를 꺼내 썼다.
3년 전, 지난 2020년, 코로나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코로나에 대한 대비는 오로지 거리두기와 마스크뿐이었던 시간들 속에, 마스크를 쓰는 버릇을 들이려고 애썼다. 마스크는 자주 흘러내렸고, 더웠고, 갑갑했고, 가려웠고, 귀찮았다. 무엇보다도 마스크를 쓴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상담 시간에도 학생과 나 사이에 뭔가가 가로막혀 있는 듯 벽이 느껴졌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오지 않을 것 같은 마스크를 벗는 그날이 왔다. 이제 드디어 예전처럼, 코로나의 습격 이전처럼, 마스크 없이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3년이란 세월은 하나의 습관을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때는 갑갑했고 불편했던 마스크였는데, 막상 벗으려니 뭔가 아쉬움이 있는 듯,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마스크를 벗는 것에 대한 부담들이 인터넷 기사로도 올라왔다. 화장을 안 해도 되어서, 표정 관리를 하기 편해서, 마스크 벗은 내 얼굴이 너무 어색해서 등 외모에 대한 이유와, 눈앞에 비말이 떠다니는 것 같아서, 코로나에 또 걸릴까 봐 등 건강에 대한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마스크는 지난 3년간 감염병의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면서 대인관계에서의 적절한 거리 유지를 해 주었던, 그리고 가장 친근한 소지품이었다.
우리는 전쟁과 같은 사회적 재난을 겪으면서 집단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코로나 또한 사회적 재난이며, K-방역으로 이름을 떨친 만큼 강력하게 우리의 현실을 지배했다. 코로나는 그 자체로도 감염에 대한 높은 불안, 대인관계의 위축 등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그로 인한 2차적 스트레스로도 이어진다. 즉, 감염에 대한 불안은 청결에 대한 강박행동을 늘리고, 생활 전반에서 불안한 감정을 자주 느끼게 한다. 대인관계의 위축은 직접적인 만남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되어 고립감을 높임으로써 학교나 사회에서의 지지체계를 위축시킨다.
오늘 정부는 3월 20일부터 마스크 전면 해제를 발표했다. 마스크는 지난 3년간 충분히 역할을 해냈다. 마스크에 기대어 살았던 그 시간들을 이제 놓아주고 우리 스스로 일상 회복을 위해 애써야 할 시간이다. 이제는 우리가 마스크를 벗고 진짜 얼굴을 마주할 때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두 사람이 만날 때, 서로를 마주 보며 “I See You”라고 말한다. 이 말은 존재로서의 너를 만난다는 표현이다. 이제 우리가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해보면 좋겠다. “I See You”
2023-03-27 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