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기자의 변] 시작

나에 대해서

▲박선영 수습국원
▲박선영 수습국원

"네가 왜 여기 앉아있는지 생각해봐. 왜 이걸 하고 싶은지, 그리고 왜 이걸 해야만 하는지." 작년 4월 글을 배우겠다고 혼자 서울에 하숙하며 하루 스무 시간씩 글과 씨름하던 때, 내 글을 봐주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을 듣고 카페 한구석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참 동안 울었다. 누구나 깊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눈물부터 나는 애증의 무언가가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게 글이었다. 인간혐오와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때도, 무기력과 비관에 시달리던 때도, 야속하게 글은 항상 내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 글은 어둡고 빛났다. 내가 글을 찾는다는 건 모든 게 무너졌다는 뜻인 동시에 유일한 탈출구를 찾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가장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이 글이었으니까. 인생의 굴곡에서 글이 없으면 다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끝없이 추락할 테니까.

이처럼 나는 '해야만 한다.'는 일념 하나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고, 1,000자 원고지 묶음을 하루에 한 개씩 쓰며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당시 그런 나와 같이 살던 언니는 임용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삼대 명문대 중 하나를 졸업해 이제는 공부에 진절머리 날 거 같은 언니가 매일 다크써클이 광대까지 내려와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는 작은 충격이었다. 언니는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반 좀비가 돼 있는 나를 보고 "그래도 아직 꿈이 있다는 게 부러워요. 나는 부모님이 너무 보수적이라, 여자는 공무원 해야 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게 있고, 그걸 한다는 게 너무 멋있고 부러워요." 라고 말했다. 이 말은 상당히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해야만 한다'와 언니가 가진 '해야만 한다' 사이의 간극을 무어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너무 빛나 보였다는 언니의 마지막 엽서를 보며, '해야만 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건 언니랑 나랑 다를게 없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때부터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 부모님과 나 자신의 요구에서 벗어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건 여전히 글이었다. 전과 다른 게 있다면,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써 갈기는 글이 아닌 고통 밖에 있어도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 후로 각종 기사나 잡지에 실린 글에 눈이 가기 시작한 것 같다. 나를 파고들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글, 그러면서도 내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그런 글 말이다. 이런 면에서 기사나 홍보를 위해 쓰인 각종 글은 매력적이었다. 나는 '이런 글이라면 조금 더 즐겁게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신문방송국에 지원하게 됐다.

내가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그냥 즐겁게 글을 쓰고싶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내 안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내가 가진 것은 '내 생각, 판단, 나이대에 맞는 반짝이는 몇 가지 '아이디어' 정도다. 가장 멋진 건 아는 것에 나의 깊은 생각이나 고민을 더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신문방송국 활동을 통해 앞서 말한 것들을 구체화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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